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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남기기 2006.07.06김석태
목사님 ! 사랑합니다. 일년 전만 해도 목사님의 숨결이 이 땅 위에 살아 계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 안식하신지 벌써 일년이 다가왔습니다. 그 동안 이 못난 제자는 수없이 목사님의 영전에 글을 올리고자 필을 들었다가 할말을 잃고 놓았답니다. 목사님을 천국에 환송하고, 21일 간을 한국에 머물면서, 목사님의 육성을 재생하여 들으면서, 늘 옆에 계신 감정을 잃지 않았습니다. 또한 목사님의 살아 계신 숨결을 체감 하고져 서울, 분당 한신 교회를 번갈아 다녔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의 추모 1 주기를 필리핀 바기오에서 맞이하며, 필을 들어 글을 올리고자 합니다. 용서하소서. 제가 한신교회 개척 당시에 목사님과 부목사로 동역하면서, 목사님의 고향 고부의 사람으로부터 목사님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가난한 가정에 태어나, 남과 같이 학생모를 쓰고 다닐수 없어, 학기 초에는 등록이요, 학기말엔 시험을 치기 위하여 등교요, 그 중간은 집안 살림을 돕고저 노동하기에, 학교를 출석하지 못하셨다죠 ? 그렇지만, 성적이 우수하여 퇴학 처분을 받지 않았을뿐더러, 선생님들의 화제의 인물이요, 사랑의 대상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가정에서는 효자로서 인정을 받았다지요. 아버지는 술로서 재산을 탕진 할지라도, 목사님은 길가에 쓰러진 아버지를 업어오며, 효자의 본을 보여 주신 목사님. 해마다 홍수에 뚝이 터져 물난리가 나게 된다면, 면장을 위시하여 협동을 호소하나, 마을의 주민들이 외면하고 동원이 되지 아니하면, 나이 어린 소년 목사님을 찾아 도움을 요청하였다 합니다. 이때 목사님은 비록 나이 어린 소년이었지만, 마을을 돌아다니며 협력을 호소 하노라면,       모두가 연장을 들고 나와 무너진 뚝을 막았다지요. 이 처럼 나이 어린 시절일지라도 모든 이의 사랑과 인정을 받았다지요. 목회의 출발지는 고부 ! 고부의 목회는 하늘과 땅을 잇는 출발이요, 목회의 대망을 펼치는 산실이었다지요. 이웃과 사회로부터 인정을 받으셨던 목사님 ! 이제는 하늘과 하나님으로부터, 교회와 성도들로부터, 인정받는 목회자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이때로부터 예레미야 처럼, 눈물의 목회가 시작 되었으니, 목사님 자신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을 울리고 웃기시던 목사님, 한신교회 성도만이 아니라, 한신목회 개발원 쎄미나에 참석하신 목사님들을 매일 새벽마다 통곡하며 회개의 눈물을 자아내게 하신 목사님, 끝내는 현직 대통령(김대중 전 대통령)까지 울리셨던 목사님이셨습니다. 한신교회는 신반포 어린이 놀이터에서 [한국 민족을 신자화 하자 !] 이 선포와 함께 출발한 교회였으련만, 사실은 목사님의 눈물로 시작된 교회였습니다. 청계산 기도원에서 1 천 번제의 피에 젖은 눈물이 한신 성도의 가슴을 적시며 민족 성전의 교회를 부활 시켰습니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경비에게 이리 저리 쫒겨 가며, 아파트 단지를 오르내리면서, 가가호호를 찾아 전도지를 뿌리고, 교회마크를 집집마다 붙여가며 기도하던 그때, 얼마나 많은 공격과 비난을 받았던지요 ? 경비를 위시하여, 관리소 직원과 소장에게, 심지어는 교인들 마저, 아까운 종이를 길바닥에 낭비하는 일이라고... 그러나 목사님은, 5만장 10만장을 뿌려, 단 한 사람이라도 구원만 한다면, 이보다 더 값진 일이 어데 있으랴 ! 한 사람의 생명은 천하보다 더 귀한 존재인데, 얼마든지 뿌려야 하지요. 한국 민족을 신자화 하기 위해서는 한신 교회 전도지가 서울 바닥에 뿌려저 지려 밟고 다니게 합시다. 청소부가 쓸어내고, 또 쓸어내도, 뿌리고 또 뿌려야 합니다. 낮과 밤으로 계속 뿌려 영혼 구령에 몰두 하셨던 목사님 이셨습니다. [한국 민족을 신자화하자 !] 1 차는 강남, 2 차는 한국, 3 차는 세계란 선교 목표, 교회 개척 100 교회란 선포에, 많은 비난과 조소도 받았으련 만, 이 구호는 계속 외쳐졌고, 일관되게 선교 목표는 이 땅에 널리 번져 갔습니다. 그리고 새 아파트 단지가 새워 질때마다, 1 교회, 2 교회, 3 교회, 4 교회를 다락방에 개척하여 지금의 서울 한신 교회 자리를 마련하여, 하나가 되기 까지는, 반포의 이 땅이 눈물에 젖었답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두 번째 사선을 넘는 경험을 해야 하셨죠. 처음에는 옥구 교회 목회의 현장에서 사선을 넘는 과정을 지나, 전주 예수 병원 회복실에서 깨어 나실 때, [여호와는 선하시다,] 는 외침으로, 온 성도에게 많은 감동을 주신 목사님 ! 두 번째는 서울 한신 교회 목회의 현장에서, 그 때가 주일 예배 후로 기억 됩니다. 김목사, 나 아파서 병원에 가 보아야 하겠어 ! 그러면서도 웃음짓고, 아픈 모습을 감추신 목사님, 응급실에 들어서자 [환자가 누구요.]라는 질문에 웃으시며, [내가 환자요] 여유 만만한 모습으로 바라보며 [ 농담 마시요 ] [ 환자가 누구시냐 고요 ?] [저 라니까요] 사모님을 가르키며, [저분이 환자 같은 데...] 이때 모두가 태연한 모습에 여유 만만히 웃었답니다. 체온이 40 도를 넘은 급박한 상황에서도 여유와 웃음을 잃지 않던 목사님 ! 담석증이란 대 수술을 받고 깨어나서도 신음소리 한번 내지 않아 서울대 병원 내에서도 화제 거리가 되었지요. 수술 후 3 일이 멀다하게 책을 손에 들고 독서에 들어가신 목사님, 고통의 기색이 없이 찾아오는 의사진과 방문객을 웃기시던 목사님 ! 참으로 목사님의 모습이 그리워 집니다. 제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새벽과 저녁으로 교회당을 찾아 성도들의 의자를 하나 하나 어루 만져가며 이 자리가 복된 자리, 은혜의 자리가 되게 해 달라시던 목사님, 저 역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답니다. 타 교회 부흥회에 다녀오면, 사례금을 모두 교회에 바치시고, 작은 사례금이면, 그 교회를 생각하며 더 보태서 바치셨던 목사님 ! 병원에서 받은 위로금 마져, 그대로 모아 강단에 바치시던 목사님, 천국으로 떠나시기 전에도, 아들 광선 목사를 위하여 저축한 통장마져 하나미께 드리고 천국에 가신 목사님, 한국교회의 거울과 목회자의 본이 되어 주셨습니다. 영광스럽게 가셨습니다. 심은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 이르러 지금은 영광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 마져 주님의 보좌 앞에 벗어 바치셨겠지요. 그런데 목사님 ! 교회와 성도라면 그 토록 당신의 몸이 깨어지는 것을 서슴치 않으셨던 목사님 ! 당신의 목숨보다 더 사랑 하시며 여왕 마마라 어데서든지 일컬어 주시던 사모님을, 어떻게 남겨두시고 떠나셨는지요 ? 분당에서 마지막 주일을 보내셨을 때였습니다. 병원에서 퇴원하여 강단에 서지 못하고, 당신의 설교를 영상으로 보고 들으며, 온 성도와 함께 예배 드리던 주일 이었습니다. 당회실에 둘러 목사님 곁에서 팔을 잡으니 앙상한 나무 가지를 잡듯 피골이 상겹 된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와중에서도 끝내 더 소중한 것을 꺼내 주지 못해 안타까와 하시며 하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내가 좀 더 산다면, 퍼 내 놓을 것이 많이 있는데.....] 이로부터 1 개월 후 그 토록 소중하게 여겼던 한신 교회를 찾아오지 못하고, 말없이 누어 찾아 오셨지요. 저는 목사님의 마지막 천국 환송의 모습을 지켜보며, 무척이나 아쉬웠습니다. 한신 교회 성도와 한국 교회의 성도에게 별세의 신앙을 일깨워 주고, 한국의 교계에 별세 신앙을, 신앙고백과 신학으로 정립하여 주신 목사님, 마지막 목사님의 육체가 한 줌의 재로 변하여, 수목장에 안치 할 때,   모두가 보고파 하며, 많이 울었답니다. 목사님 안식하소서. 그 처럼 사랑했던 서울 한신교회는 유능하신 강용규 목사님께서 성도와 하나 되어 주의 나라를   땅 끝 향해 나아가고, 그 토록 보람을 담아 사랑했던 분당 하신 교회는 저력있는 이윤재 목사님이 한 몸의 교회를 이루어 주의 분부하신 명령을 향하여 사명에 주력하고 있답니다. 두 한신교회는 둘이 아니라 하나를 주안에서 이루어 한국과 세계에게 참된 교회의 거울이 되리라 믿습니다. 그런데요. 목사님 ! 주례하여 주시고, 축복하여 주신 김대진 목사가 목사님께서 가신지 7개월 21 일 만에, 33 세의 나이로 목사님의 뒤를 이었답니다. 순직자인지 ! 순교자인지 ! 감히 말할수 없지만, 이곳 필리핀 현지에서 순교자라 이름을 명명하여 주고 있습니다. 어찌하든 필리핀 선교지에서 한 알의 밀알로 땅에 떨어졌답니다. 감히 감당할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라 믿습니다. 우리 부부도 얼마 되지 않아 목사님과 김대진 목사의 뒤를 따를 진데 최선을 다 해보고져 합니다. 그러나 너무 힘이 듭니다. 견디기 힘들 때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는 물론 많은 깨달음을 시시각각으로 베풀어 주십니다. 29 세에 미망인이 된 자부도 주안에서 대망을 품어 일어서서 전진하고 있답니다. 기대되는 꿈나무입니다. 초대 교회로부터 선교사로 파송받아 그가 섬겼던 핑엍 교회를 섬기기로하였습니다. 신학 공부도 다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제 5 살 된 아들 예빈이도, 아버지가 사랑했던 필리핀 핑엍 교회를 영원히 사랑한다 합니다. 2 살난 예현이도 아빠를 그리고 있으니, 그 길을 걸어 갈 것입니다. 필리핀 달동네에 세워져 가고있는 핑엍 교회, 지금은 열악한 환경이지만, 순교 두 사람의 피가 뿌려진 제단으로서, 사명이 자라고, 능력이 자라서, 선교 주자로 쓰임 받을 교회가 되리라 믿습니다. 이 종의 남은 생애가 얼마인지는 모르나, 우리는 힘 주시는 대로 선교 사역을 하다가, 이 곳에 이 몸을 묻으려고 합니다. 목사님 ! 감사합니다. 부족하였지만, 지금까지 걸어 온것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요, 둘째는 목사님으로부터 배운 은덕이라 생각합니다. 안식하소서 ! 목사님을 통해 이 세상에 세워진 두 한신 교회 한국과 온 세계에 ! 오늘의 역사와, 내일의 역사를 위해, 주님 오시는 날까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교회로 주님의 참된 교회의 거울로, 쌍벽을 이루어 전진, 전진하며, 건재해 갈 것입니다. 2006. 7. 6.   교제  김석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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