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기고문

전체메뉴
[신앙세계 2005.05] 그리스도의 영성이 충만한 가정 2005.05.06이중표목사
신앙세계. 2005. 5.

그리스도의 영성이 충만한 가정



영성은 20세기 후반 이후 많은 그리스도인들로부터 깊은 관심을 받고 있다. 영성에 대한 강조와 추구가 교회의 신앙생활에서 하나의 큰 유행이 되고 있을 정도이다. 영성이란 하나님과의 관계성이기 때문에 영성에 대한 강조는 하나님을 믿고 있는 그리스도인과 교회에서 있어야할 지극히 정당한 흐름이다. 그런데 진정한 영성이란 전인적인 것이어야 한다. 영성의 강조가 인간성의 특정한 부분으로 여겨지면서 인간의 육체서오가 사회성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성서적이라고 말할수 없다. 성서적 영성은 하나님과으ㅟ 관계적 지평은 물론 자기 자신과 타인을 포함하는 세상과의 관계성을 지니고 있다(마 22:37-40) 그런데 최근 개신교의 영성강조에서는 역사회귀적인 편향이 나타나고 있다. 수도원 영성이나 탈속주의에 대한 과도한 관심과 그릇된 환상이 그것이다. 세상을 벗어나고, 사람을 버리고 가정을 떠난 곳에 영성이 있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생각은 교회사 속에서 뿌리가 깊다. 그 구체적 형태는 수동원 운동으로 나타났다. 비합법적 교회가 제도적으로 공인되고 국교화 되면서 상실되는 고난의 영성을 유지 회복하려는데서 수도원운동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수도원 운동은 결국 플라톤의 이원론적 세계관의 영향속에서 이교적으로 형성되었다. 2천년 교회사 속에서 수도원이 담당한 긍적적 역할도 물론 있다. 신학과 학문을 보존하였다든지 구제와 봉사의 사역을 담당했다든지 나름의 역할을 부인할 수 는 없다. 그러나 세상과 육체적 삶과 가정에 대한 경시를 끊임없이 불러왔다는 점에서 수도원주의는 그 태생적 한계가 있다. 마릔 루터와 칼빈의 종교 개혁은 왜곡된 탈속 주의 경향으로 부터 영성을 회복하였다는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도 개신교 내에서조차 수도원 영성으로의 복고를 운위하는 현실은 참으로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수 없다. 수도원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면 그곳이 수도원이며 교회이다. 영성이란 사람이 사는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인격으로 살아가는 마음이며, 수도란 그 마음을 닦는 것인 까닭이다. 참다운 영성은 가정의 영성이며, 진정한 영성이 형성되고 실현될 마당은 가정이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엇보다 먼저 겸손의 영성을 가져야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 서 자기를 비우고 겸손하게 낮아지셨다. 예수님의 겸손의 영성은 하나님에 대해서는 물론 사람을 향해서도 나타나셨다. 가정은 겸손의 영성을 배우는 현장이다. 가정에서 가족들이 자기를 비우고 서로를 높이며 살때 그들이 곧 수도사이다. 최고의 수도사는 가정수도사이다.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하고,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며 사는 것이 수도다. 에베소서는 성령의 충만은 상호 복종으로 나타나고 그 실현의 첫번째 현장이 바로 부부사이임을 선언한다(엡 5:18-33).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이 아내에게 복종하는 것이 성령 충만의 증거요 참 영성의 표현이다. 생각해보면 한 남편만을 믿고 일생을 사는 아내가 참 수도사요 큰 믿음이다. 한 아내만을 끝까지 사랑하면서 곁눈 주지 않고 살아가는 남편이 참 수도사이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 수도원이라는 환경 속에서 남에게 마음 주지 않은 것은 무엇이 어렵겟는가? 그러나 세상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부부를 그 누구도 나눌 수 없다는 믿음으로 오직 서로에게 복종하면서 살 수 있는 것. 이것이 참다운 수도요 진정한 영성이다. 가정에서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는 아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아내를 사랑해줄수 있는 남편의 최고의 수도사요 그 영성이 참으로 거룩한 영성이다.

사랑의 하나님과 관계를 맺기에 참다운 영성은 사랑의 영성이요 그 영성은 섬김으로 나타난다. 예수님은 일관되게 섬김의 영성으로 사셨다. 가정은 진정한 섬김의 현장이다. 부모와 자식이 선한 마음으로 서로를 섬겨주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부모로서 자식을, 자식으로서 부모를 진정으로 섬겨줄때 그 들은 성자와 성녀가 되며, 그 가정은 성소가 된다. 사랑을 쏟아줄 자녀를 낳아주는 아버지가 성자요 길러주는 어머니가 성녀다. 최고의 성자 성녀는 자식을 낳고 기르면서 자기 자녀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로 섬겨주는 사람이다 세상 많은 사람들은 자녀에 대하여 제가 낳고 기른 자식이라며 제 마음대로 하려한다. 그 결과 자녀들의 인간성은 상실되며 비인격적 존제로 타락하게 된다. 자식을 사랑해야할 부모가 도리어 타락한 죄인 아담과 가인의 후예로서 자녀들을 새생산하는 죄인과 악녀가 되는 격이다. 냉정히 생각해보면 아무리 자기 속으로 낳고 제손으로 길렀어도 자기 자식은 없다. 전부 하나님의 선물로서 하나님 소유의 기업이다. 자신이 낳고 기르는 자녀를 자기 자식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믿고 지극히 섬겨주어야 한다. 역으로 자식은 부모를 봉양하면서 하나님 처럼 섬겨주어야 한다(엡 6:1~4). 부모가 자식을 섬기고 자식이 노부모를 지극하게 봉양하며 섬길때 그 가정은 영성수련의 최고 현장이 된다.그리스도인 최고의 영성은 희생의 영성이다. 자기 비움을 통해 세상을 살리는 것이 참다운 영성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희생으로 온 인류를 살렸다. 희생으로 생명이 살아날 때 거기 하나님이 계시다. 그러나 교회 역사 속에서는 희생의 사건이 드물게 일어난다. 교회와 성도에 대한 핍박이 있는 곳에서만 순교자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가정에서는 늘 순교의 사건이 일어난다. 아내는 남편을 하늘같은 지아비로 알고 자신을 기꺼이 희생한다. 그 아내는 곧 순교자이다. 아내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여기며 목숨바쳐 아껴준 남편도 순교자이다. 아버지의 희생으로 자녀들이 살고, 어머니의 희생으로 자녀들이 자란다. 특별히 버려진 남의 자녀를 입양하여 길러주고 그를 위해서 희생해주는 입양부모야말로 참 순교자의 영성을 지녔다. 입양이라는 것은 내가 낳고 길러도 내 자식이 아니요. 남이 낳은 자식도 내 자식이 아니며 오직 그 모두를 다 하나님의 자녀로 믿는 신앙의 고백이다. 입양은 자신을 하나님의 대리자요, 대모로서 은혜를 체험케 하는 예수 그리스도 영성의 실천이다. 가정은 그 누구라도 예수님의 마음으로 서로를 위하여 희생할수 있는 영성 실현의 장이다. 겸손과 섬김, 희생이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성이 가장 먼저 실현되는 곳은 가정이다. 가정에서 생명을 부여받고, 가정에서 섬김의 영성을 수련하며, 다른 가족의 희생 속에서 성장한 영성이며 세상속에 나아가 세상을 살릴수 있다. 하나님은 이세상을 가정으로 창조하셨으며, 가정교회로 회복하셨으며, 가정 천국으로 구원하신다. 가정의 영성은 가정에만 실현될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곳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기업이 가정처럼 될때 안식이 있다. 지역사회와 민족공동체를 가정처럼 될때 하나님 나라는 임하는 것이다. 가정영성이야말로 참 영성이요 한 나라와 온세계에 성취되어야 할 예수 그리스도의 영성이다.
비밀번호 입력

한신교회 회원님의 소중한 정보보호를 위하여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