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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수단상 41] 복음이 살아야 민족이 산다 2005.06.24이중표목사
민족의 위기 앞에서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각양각색의 방안을 내놓는다. 정치가는 정치로, 기업인은 경제로, 근로자는 노동으로, 과학기술자는 과학기술의 힘으로, 군인은 군사력으로 민족을 살릴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 민족을 살리는 길은 오직 복음을 살리는 데 달려있다고 단언한다. 복음을 살리는 민족은 흥하고 복음을 거절하는 민족은 망한다. 세계 역사가 이것을 증거한다. 복음을 받아 그 정신으로 살아간 민족과 그 공동체는 융성하였으며, 복음을 외면한 집단은 망하였다.

서구 역사를 보면 러시아나 프랑스에서 유혈혁명이 일어나던 때,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영적 부흥이 일어났다. 러시아에는 제도로서 교회는 있었으나 살아있는 복음의 증인은 없었다. 그러므로 러시아에서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났다. 공산당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기독교를 핍박하고 교회를 폐쇄하자 세계에서 가장 살기 힘든 나라가 되었다. 비슷한 시기 영국에서는 존 웨슬레의 부흥운동이 영국을 유혈 혁명에서 구해낼 수 있었다. 독일이 낙후된 중세 봉건사회로부터 근대민족국가로 살아난 것은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때문이었다. 미국에서는 D. L. 무디의 부흥운동이 그 나라를 문명국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유교는 관혼상제나 지켜주었고, 불교는 칠성당을 짓고 아들이나 낳아주었고, 기독교는 무엇을 했나? 서릿발같은 칼날을 받으며 압록강의 얼음을 밟으며 복음이 들어온 것은 이 민족을 어두움에서 구해내려고 한 것 아닌가!"

함석헌 선생이 그의 저서「뜻으로 본 한국 역사」에서 설파한 민족사에 있어서 기독교 복음의 의미이다. 우리 민족이 오늘에 이른 것은 복음의 힘이었다. 기독교는 이 민족이 어려운 때 십자가를 함께 지고 고난의 종이 됨으로 민족을 구원한 복음이 되었다. 누가 교회를 어떻게 비판하든 이 민족 역사는 복음과 함께 운명을 같이 해왔고 민족을 살려 왔다. 복음은 이 민족을 우매한 미신에서 구해냈다. 일제 하에서 교회는 민족 독립운동을 주도해왔다. 해방 후에는 혼란한 사회주의 사상에서 이 민족의 역사를 지켜냈다. 6.25의 민족 전쟁에서 이 나라를 살려낸 것도 그리스도인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다. 7-80년대 군사독재 시절 교회는 이 나라의 민주주의와 인권의 보루였다. 그러므로 김구 선생은 '경찰서 백개 세우는 것보다 교회 하나 세우는 것이 애국이 된다'는 선견지명을 말하였다.

오늘날 똑같은 땅 한반도 위의 한 민족이지만, 남한은 잘 살고 북한은 가난한 나라가 되었다. 가뭄과 홍수가 와도 피해를 입는 쪽은 북한이요 남한은 그 피해를 비껴갔다. 그 원인을 영적으로 살펴 볼 때 이유가 있다. 남녘에서 복음이 인정되고 교회가 부흥할 때 북에서는 교회가 폐쇄되고 그리스도인들은 핍박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남한이 경제적으로 성장할 때 북한은 헐벗고 굶주리는 황무한 땅이 되었다.

누가 교회 역사를 비판하든지 오늘까지 이 나라 이 민족이 이 만큼이라도 발전을 이루고 평화를 지켜온 것은 누가 정치를 잘해서 된 것이 아니다. 복음을 듣고 눈물을 적시며 기도하는 사람들의 피맺힌 부르짖음이 하늘을 감동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빌리 그레함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카나다에서 숲속의 새 소리에 잠을 깼다. 일본에 와서는 자동차 엔진소리에 잠을 깼다. 그러나 한국에 와서는 새벽기도 소리에 잠을 깼다. 새벽에 기도하는 나라 한국은 분명 미래 세계의 희망이다."

이 민족을 살릴 다른 길은 없다. 오직 만유의 주재이신 하나님뿐이다. 그러므로 민족을 살리는 것은 복음을 들고 기도하는 그리스도인이다. 한반도에서 복음이 다시 살아야 한다. 복음이 살아야 민족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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