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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 입성하신 이중표목사님께! 2005.09.15김해성
천국에 입성하신 이중표목사님께! 별세하신 목사님!   평안하시지요?   그토록 말씀하시던 별세를 이루시고 별세의 첫 열매이신 주님과 함께 계시니 참 평안과 행복을 누리고 계시겠지요.   목사님 소식을 듣고 목사님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내 스며나오는 눈물을 훔쳤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신문기자가 전화를 해서 목사님에 대해 이것저것을 물어 왔습니다.   저는 가리봉에 세워진 한신선교관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여 광주, 안산, 양주, 발안에 세워진  외국인노동자의 집과 대방동 쉼터, 그리고 얼마 전 계약을 하고 바로 오늘 창립 예배를 드리고자 했던 경기도 광주의 방글라데시 공동체 센터 이야기를 했습니다. 더 나아가 상담소인 외국인노동자의 집/중국동포의 집과 300여 명이 머물고 있는 쉼터들, 세계선교신학대학과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 약국 등을 설명하면서 이 모든 것이 한신교회와 이중표 목사님을 통해 뿌려진 씨앗의 열매들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이 엄청난 세계 선교의 사역들이 각처에서 펼쳐지고 있는데 문득 목사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저출산에 고령화 사회가 진행되고, 조만간 외국인노동자가 오백만 명, 천만 명 시대가 올 터이니 이 모든 사역을 잘 감당하라’시며 손잡고 기도해 주신 것이 엊그제 같은데 곁에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목이 메여 제가 울먹였나 봅니다. 이내 알아차린 기자가 “마음이 너무 아프시지요?” 하고 위로를 건네 왔습니다.     창 밖에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습니다.   목사님! 2002년 4월 25일을 기억하십니까?   문래동에 있는 구 법원자리에 펼쳐진 그 광경을 말입니다. 우리나라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는 불법체류 외국인노동자들로부터 자진신고를 받았습니다. 자진신고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체류기간 1년을 연장시켜 준다는 정부의 약속에 따라 외국인노동자들과 중국동포들이 끝도 없이 대열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주변에는 가짜 표를 파는 사람들과 무료로 나누어 주는 신고 용지조차 복사를 해서 한 장에 만원씩을 받고 파는 이들이 들끓었습니다.   한국 글을 잘 모르는 외국인들에게 대신 신고서를 써주는 대가로 3-4만원을 받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접수처로부터 몇 겹씩 줄을 만들어 차례를 기다리는데 전날 밤부터 기다린 줄을 놓칠까봐 물도 마시지 않고 화장실도 가지 않았습니다. 불법체류 외국인 25만 6천여 명이 두 달에 걸쳐 신고를 마쳤는데 93개국 사람들이었습니다.   경찰관과 출입국 직원들은 한 줄에 열 명씩 열 줄을 만들어 100명씩 입장을 시켜 앉혀놓고 순서를 기다리게 했습니다.   우리는 법무부의 요청으로 안내와 상담을 도우며 신청서를 나누어주고 글을 모르는 외국인노동자들 대신 무료로 신청서를 작성해 주는 일을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기회’였습니다.   각국에서 온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라고 주시는 기회말입니다.   그들에게 우리의 사역을 소개하고 어려움을 당하거나 문제가 발생하면 찾아오라고 했습니다. 안내장과 전도지를 나누어 주고 전도를 하였습니다.   먼저 중국인들에게는 중국말로 복음을 전하고 이어 동포들에게는 한국말로, 그리고 외국인들에게는 영어로, 구 소련지역과 동유럽노동자들에게는 러시아어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루에 5천여 명에서 8천여 명이 몰려들어 신고를 하였습니다.     이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께서 얼마나 급하시면 이런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게 하시는지 놀랍고도 급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 엄청난 사역을 함께 감당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여러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에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모두들 답변은 했지만 그러나 현장에 오신 분은 없었습니다.   아니, 단 한 분이 오셨는데 그분이 바로 한신교회의 이중표 목사님이셨습니다.   목사님은 뒷짐을 지시고 물끄러미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이내 목사님의 눈에는 주르륵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유리하며 방황하는 외국인노동자들의 안타까운 모습과 갈급한 심정으로 복음을 듣는 이들이 측은하게 여겨지셨나 봅니다.   목사님께서는 한마디를 하셨습니다. “세계 선교가 이 땅에서 이루어지고 있고만”   이윽고 목사님께서는 가리봉동의 센터에 가보자고 하셨습니다. 쉼터에 머물고 있는 이들을 만나시고 센터를 둘러보셨을 때는 점심식사 시간이 훌쩍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식사를 하시자고 말씀을 드리자 밥 먹는 일보다 먼저 할 일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오라고 하시더니 뒷짐을 지시고 천천히 육교를 오르셨습니다. 길 건너편 부동산 사무실로 들어가셨습니다.     가리봉 근처에 비어 있는 넓은 공장을 사거나 임대할 수 있는지를 물으셨습니다.   주인은 이것저것 들쳐보고 전화를 해보더니 매물이 없다고 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그렇다면 현재 쓰고 있는 건물을 매입해서 선교관으로 활용하자고 제안하셨습니다.   그날, 그 만남으로 인해 지금 가리봉동에 세계선교신학대학, 서울외국인노동자의집/중국동포의집, 쉼터,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 등이 자리 잡게 되었고 세계 선교의 전초기지로 우뚝 서있음을 보게 됩니다.     목사님! 사고를 쳤습니다.   2002년 9월 말, 외국인 사망사건의 처리를 위해 양주에 갔었습니다.   처리를 하고 돌아 나오는데 평일인데도 버스 정류장에 외국인들이 잔뜩 줄을 서 있었습니다. 현기증이 일었습니다. 여기가 바로 선교의 장인데 외국인노동자 센터가 한 군데도 없고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아찔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되겠다 싶어 차를 세우고 눈에 보이는 부동산 사무실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마땅한 건물이 없었습니다. 시골 동네라서 그런지 교회와 센타를 겸할 적당한 장소가 없었습니다. 몇 곳을 돌아보다가 다시 차를 타고 나오는데 전화가 울렸습니다. 마지막 들렸던 부동산 주인의 전화였습니다. 방금 건물 하나 나왔는데 싸기도 하고  찾는 공간이라는 것입니다.     양주에 나그네로 와 있는 외국인노동자들에게 예배의 자리가 있어야 함을 절실히 느끼게 된 차에 덥석 계약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리봉으로 돌아와 목사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목사님! 제가 사고를 쳤습니다.” “사고를 치다니 무슨 사고?” 되물어 오셨습니다. 양주 이야기를 말씀드렸더니 나지막하게 한마디 하셨습니다. “나도 좀 보여 줘.” 이틀 뒤 목사님이 오셨습니다. 한 바퀴 둘러보시자마자 함께 기도하자고 하시며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기도가 끝나자마자 교회 사무장님께 전화를 하셨습니다. “필요한 3천만 원 당장 입금해 드려!” 양주외국인노동자의집/중국동포의집과 교회가 한신교회의 사랑과 정성으로 창립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이목사님의 뜻을 두 번이나 거역하였습니다.   가리봉동의 건물 리모델링을 하고 세계선교신학대학 개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한신교회의 정성과 사랑을 알리고 기념하기 위해서는 간판을 하나 거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 목사님께 간판을 만드는데 맨 위에 ‘한신교회선교관’이라고 쓰겠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목사님은 잠시의 틈도 주지 않으시고 즉각 선교관 간판은 붙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래도 붙이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하여 간판을 붙이게 되었습니다.   발병하신 후 올 초 세계선교신학대학 입학식과 졸업식이 열렸는데 목사님께서는 몸이 매우 불편하심에도 불구하고 참석하셨고 말씀을 전해 주시고 이사회까지 인도하셨습니다.   일정을 마친 후 나가시면서 건물을 올려보시더니 한신교회선교관이라는 간판을 보시게 되었습니다. “저 간판 걸지 말라고 했는데 왜 걸었지?” “기념도 하고 알려야 한다고 생각해서 만들었습니다.”라며 뒤통수를 긁었습니다. “이 모든 일, 사심없이 행하는 것을 알고 있잖아, 당장 떼도록 해.”엄명을 내리셨습니다. 그러겠다고 약속을 드렸지만 결국 떼지 않았고 그 간판은 지금도 덩그라니 남아 있는데, 우리 목사님이 계시지 않네요. 나 죽으면 후배들 누가 도와주지?   병세가 악화되고 힘들어지실 때 목사님은 일으켜 달라고 요청을 하셨습니다. 천천히 손을 들어 곁에 서 계시는 사모님의 손을 잡으셨습니다.   아마 심각하게 하실 말씀이 있으신 것 같아 보였습니다. 사모님께서도 아연 긴장을 하시면서 목사님의 입을 주시하셨습니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 죽으면 후배들을 누가 도와주지?” “나 죽으면 후배들을 누가 도와주지?” 여러 차례 같은 말씀을 반복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사모님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심각하게 무언가를 기다리신 사모님이 엉뚱하게 느껴지는 말씀에 서글프셨을까요? 아니면 가족을 챙기기는커녕 후배들이나 걱정하시는 목사님께 서운한 마음이 드셨을까요? 마지막 떠나가실 것을 아시고 심각하게 남기시는 말씀에 어떤 예감을 가지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사모님의 눈물에 목사님도 함께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가족보다 후배들, 세계 선교를 챙기시는 그 마음이 가슴을 잔잔히 적셔옵니다.   “우리에게도 교회를 만들어 주세요?”   경기도 광주에도 외국인노동자의 집이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스리랑카 사람들이 진을 치고 살고 있고 예배를 드립니다.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들어갈 엄두조차 내지 못합니다. 이들은 모임을 열어도 옥상에서 모이거나 계단에서 만납니다. 견디다 못한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집단으로 몰려와서 요구를 시작하였습니다. “우리에게도 교회를 만들어 주세요?” 오래 살다보니 별일을 다 봅니다. 온통 이슬람 종교 사람들인 이들이 교회를 만들어 달라니 혼돈이 옵니다. 어쩌면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아니한 결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회개를 하였습니다. 교회를 만들긴 만들어야 하는데 별 뾰족한 수가 없었습니다. 기댈 언덕은 한신교회와 이중표 목사님뿐이었습니다. 요청을 드리자 당회를 거쳐 주보에 광고가 실리고 5천만 원이 만들어졌습니다. 한신교회 교우들의 정성어린 그 헌금으로 병원 하던 자리를 물색하여 계약을 하고 이틀 만에 공사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바로 오늘 2005년 7월 10일 오후 3시에 창립예배를 드리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창립예배는 미루어지고 그 시간에 우리는 이중표 목사님의 추도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안타깝지만 또 한편으로는 마지막까지 세계 선교를 꿈꾸며 별세하시는 목사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목사님!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증인의 삶을 살겠습니다. “꼭 끈 떨어진 연 같아!” 빈소에 와서 시무룩하게 앉아 있는데 선배 목사님 한 분이 등을 툭 쳤습니다. “꼭 끈 떨어진 연 같아!” “끈이 떨어지다니요?”   아마 목사님께서 외국인노동자 선교에 얼마나 크게 기여하셨는지를 알고 계시기에 하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저는 목사님의 환하게 웃는 사진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한 가지 결심을 하였습니다. “끈이 떨어지기는 왜 떨어져? 더 단단히 묶어 매고 따라갈 텐데...” “주님의 유지를 받들어 평생을 헌신하신 목사님처럼 나도 그 끈에 잇대어 살아가야지.” 제 안에 목사님의 별세의 헌신을 닮아가려는 기운이 꿈틀꿈틀 솟구쳐 올라옵니다.   장충체육관을 꽉 채운 7천 명의 외국인노동자들과 장장 6시간을 버티시며 기도하시던 목사님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지난해 대수술을 받으시고 발안센터 창립예배 때 부축을 받고 오셔서 사력을 다해 말씀을 전하시던 모습도 기억합니다. 대림센터 개소예배 때에는 발의 상처로 인해 양말도 신지 못하시고 슬리퍼에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하시면서도 직접 오셔서 사자후를 토하시던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올 3월 세계선교신학대학 입학식과 졸업식 때입니다. 여전히 힘든 걸음을 떼시면서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세계 선교를 부르짖으시며 졸업생과 입학생들의 손을 하나하나 잡아 주시던 그 손길과 따뜻한 사랑의 온기를 우리는 간직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외국인노동자와 중국동포 선교를 위해서라면 마다하지 않으시고 지치신 몸이지만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오셔서 격려해 주시던 이중표 목사님! 이 땅에서 외국인노동자, 중국동포 선교는 온통 목사님이 뿌리신 씨앗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 126:5-6) 이제 우리 가슴 한 켠에 목사님을 묻습니다. 하늘을 품은 마음으로 외국인노동자들과 중국동포들을 사랑하셨고, 그러기에 그들에게 빈 무덤의 신비를 가르치셨습니다. 나그네들의 예배의 자리인 이방인의 뜰을 마련해 주시고, 급박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세계 선교의 포문을 여신 목사님의 사랑을 기억합니다. 여러 가지 어려움과 슬픔, 깊은 그리움에 지쳐있는 고단한 이들에게 쉴 수 있는 신령한 주일 주막집을 제공해 주신 그 사랑을 생각합니다. 자기를 비워 인류를 채우고, 자기를 죽여 인류를 구원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목사님을 통해 배우게 되었습니다. 반포에, 분당에, 가리봉에, 성남에, 광주에, 양주에, 안산에, 발안에, 대방동에, 신도림에, 아니 이 땅 한반도 전체에 목사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나그네들이 살아갑니다. 그들은 세계로 퍼져나갈 것입니다. 순교자의 영성으로 무장한 대열을 보십시오. 우리 모두 뒤따르겠습니다. 다시 뵙는 날, 엿새 후의 신비를 함께 맛보게 될 것입니다.   이제 주님 앞에서 다시금 목사님을 불러 봅니다. “목사님!” “우리 목사님!” “이중표 목사님!”                          목사님의 제자  김해성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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